10월 11일
불과 약 3주 전이다. 지난달 11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 참석한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단호했다. 여당인 국민의힘 윤주경 의원이 "불법 공매도 방지를 위한 전산시스템 구축이 어렵냐?"고 질의하자 김 위원장은 "그렇다"고 대답했다.
개인투자자들은 오랜전부터 불법 무차입 공매도를 실시간으로 적발할 수 있는 모니터링 구축을 해야 한다고 요구해 왔다. 하지만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이날 국회에서 "기술적으로 강제할 방법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면서 "외국인 투자자가 중요한 나라에서 외국에서 아무도 안 하는 복잡한 시스템 만들어서 외국인 거래를 어렵게 만드는 게 과연 개인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인지 의문"이라고 반박했다. 시스템을 만들면 외국인 거래가 어려워지고 이는 우리 전체 주식 시장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얘기다. 결국 수기로 관리하는 공매도를 전산화하는 것이 개인 투자자 보호책은 아니라는 게 김 위원장의 소신이었다.
시장에선 김 위원장의 이날 발언을 현 공매도 제도가 개인 투자자에게 불리하지 않고 불법 공매도를 막기 위한 시스템 구축은 불가능하다는 쪽으로 받아들였다. [참고 : 김주현 금융위원장 "공매도, 개인 투자자 불리?…타당치 않다"/ 조선비즈, 10월 11일]
10월 27일
보름 정도 지나 뉘앙스가 많이 바뀌었다. 국회 정무위원회 금융위·금감원 종합 감사에 참석한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투명하고 합리적인 절차를 통해 필요한 모든 공매도 제도를 개선하도록 추진하겠다"고 예고했다. 우리 증시 상황이 좋지 않자 이른바 '개미'들의 원성이 극에 이르던 시기였다.
이날 여당인 국민의힘 윤창현 의원이 "높은 진입 장벽 문제, 기울어진 운동장, 불법 공매도에 대해서 다양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데 6개월 정도 아예 공매도를 중단하고 조치를 취해야 하는 것 아니냐?"라고 질의하자 김 위원장은 "투자은행(IB)들이 계속해서 (불법 공매도)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것을 보고 있다"며 "다시 원점에서 저희가 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국내 최고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서 공매도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11일과 27일 사이 있었던 특이 사항은 글로벌 투자은행(IB)의 불법 공매도 문제였다. 지난달 17일 검사 출신인 이복현 금감원장은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불법 공매도 건은 그냥 단순히 개별 건으로 보기에는 시장을 교란시키는 행태라든가 이런 것이 너무 크기 때문에 근본적인 차원에서 고민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복현 원장은 형사처벌도 가능할 거 같다며 "외국에 있는 사람(임직원) 끌어와서라도 처벌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어쨌든 김주현 위원장의 국회 발언이 전해지자, 시장에선 대부분 공매도에 대한 금융당국의 '강한 조치'가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런데…
11월 3일
일주일 뒤 경제지 두 곳에서 공매도 관련 기사가 나왔다. 먼저 헤럴드경제는 '당정, 이달 '공매도 전면 금지' 추진…'메가 서울' 이은 두 번째 야심작'이란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국민의힘과 정부가 이달 근본적인 제도 개선 전까지 공매도를 한시적으로 전면 금지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정부여당은 최근 금융위원회와 협의 끝에 공매도 한시 금지안을 내놓기로 했다" "기간 및 대상은 코로나19 당시 공매도 한시 중단 발표 때와 동일한 수준일 것으로 보인다"… 지금 보면 맞는 내용이다.
또 한국경제는 '공매도 중단 밑그림 나왔다…이르면 다음 주 발표'라는 기사를 보도했다. "시스템 개선 전까지 공매도 잠정 중단…이르면 다음 주 주말께 발표할 전망" "내년 총선까지 6개월 안팎 중단 가능성" "정부와 여당이 공매도를 일시 중단하기로 했다…재발 방지 방안이 완비된 이후 재개하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증권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감안해 장이 열리지 않는 다음 주 주말께 발표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 기사 또한 지금 보면 틀린 내용이 아니다.
그런데 금융위원회는 정식으로 '오보' 대응을 했다. 두 기사에 대해 "공매도 전면 금지 추진은 확정된 바 없으므로 보도에 신중을 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 같은 내용은 금융위원회 홈페이지 [보도설명자료]에 올라와 있다. 한시적 공매도 금지 발표 딱 이틀 전 일이다.
11월 5일
결과적으로 한시적 공매도 금지 발표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정확한 보도였다. 금융위원회는 보도 이틀 뒤인 5일 임시금융위원회를 열었다. 여기서 바로 다음 날인 6일부터 내년 6월 30일까지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 코넥스시장 등 국내 전체 증시에 대해 공매도를 금지하기로 의결했다고 밝혔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이날 기자들과의 일문일답에서 "공매도를 금지하게 된 이유는 기본적으로 시장이 불확실한 상황이고 덧붙여서 외국 주요 IB들의 관행적인 불공정 거래가 계속되는 한 자본시장에서의 공정한 가격 형성이라든가 거래 질서가 불가능하다는 판단 때문"이라고 밝혔다. '시장 불확실'과 'IB의 불공정 거래'. 김 위원장이 밝힌 한시적 공매도 금지 이유다.
'공매도 제도 개선 불가능 → 원점 재검토 → 공매도 금지 추진 미확정 → 한시적 공매도 금지'. 불과 약 3주 사이에 우리 금융당국이 국회 등지에서 공식적으로 밝힌 입장이다. 오락가락하고 있었다. 금융은 곧 신뢰다. 불안하면 정상적 투자도 멀리하게 만든다. 내년 7월 1일부터 공매도 전면 재개가 되는지, 아니면 그 사이 한시적 금지 입장이 또 바뀔 수 있는지 등 '기울어진 운동장'인 공매도 피해를 본 개인투자자들은 또다시 불안해 할 수밖에 없다. 기관투자자나 외국인 투자자보다 정보에서 소외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번 공매도 금지 조치가 내년 4월 총선용이라는 비판과 지적이 나온다. 이런 불신을 없애려면 내년 6월 전까지 금융당국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달려 있다. 그 사이 불가능하다고 했다가 원점 재검토 하겠다고 한 공매도 전산시스템을 의무화 하고, 자본시장법이 시행된 2010년 이후 올해까지 14년 동안 단 한 건의 형사 처벌도 없었던 불법 공매도에 대한 원칙적인 처벌 강화 방안을 마련하는 건 결국 금융당국 의지의 문제다.